내 인생은 회피의 연속이었다. 사람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그러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다. 그건 내 삶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숨어 있는 작가야, 철학자야.’ 그렇게 자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정작 글을 쓴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언젠가부터 멈춰섰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쓸 텐데, 지금 내가 쓴다고 무슨 의미가 있지?” — 그런 생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이 모든 건 핑계였다. 나는 실패할까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들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자신의 진짜 욕망을 숨긴 채, ‘이건 어차피 의미 없어’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현실로부터 한 발 물러서 있다. 생각이 너무 많다. 너무 계산적이고, 너무 조심스럽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사람들은 대개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나는 안다. 과거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다. 성공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했다. 쓰고 싶으면 썼고, 배우고 싶으면 배웠다. 결과는 상관없었다. 그런 순간에는 실패조차도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고, 그래서인지 후회도 없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남지 않는 일.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자라게 하고, 인생의 토대를 만들어줬다. 중요한 건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나는 그때 진심이었느냐’**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실패 없는 미래를 꿈꿨고,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의 이상적인 나를 지키기 위해 현실의 나를 정지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회피하다 보면, 언젠가 깨닫는다. ‘이렇게 살면 진짜 아무것도 되지 않는구나.’
우리는 왜 실패를 두려워할까? 실패하면 무가치해질까 봐,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를 실망시킬까 봐. 하지만 진짜 위험은 실패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결국 모든 것을 실패하는 삶이 된다.
실패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운이 나쁘거나, 역량이 부족하거나. 운은 어쩔 수 없지만, 역량은 행동을 통해 길러진다. 그런데도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역량은 쌓이지 않고, 기회는 지나가고, 자존감은 바닥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믿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렇다면 용기란 뭘까? 용기란 두렵지만 그래도 시도하는 것이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이건 내가 원했던 일’이라 말할 수 있는 그 한 가지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실패할 수 있다. 낙담할 수 있다. 하지만 용기를 낸 사람만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진짜 자기 자신을 만난다.
특히 젊은 시절엔 더욱 그렇다. 아직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없다면, 실패의 대가도 견딜 수 있다. 그때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도전해야 한다. 그건 나중에 어떤 직장도, 어떤 돈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산이다.
생각은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은 행동을 가로막는 도구가 아니라, 행동을 위한 연료여야 한다. 생각은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것일 때 빛난다. 행동 없는 생각은 정체고, 핑계일 뿐이다. 삶은 어차피 불완전하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해보자.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을. 실패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시도했다는 사실이고, 그 시도 안에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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