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우리의 삶은 대개 일상적입니다. 일을 하고, 퇴근하고, 씻고, 자고. 주말이 되면 소중한 사람과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여유를 즐기거나. 그런데 이런 일상이 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 뉴스,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일이 내 앞에 닥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처음 겪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섬뜩한 일이었죠. cctv 감시를 하기 위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a 후임과 같이 생활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계단에 발을 딛었습니다. 그런데 a 후임이 문득 옆을 바라보더니 거친 비명을 지르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후임한테 괜찮냐고, 진정하라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았죠. 물어도 대답을 안 하길래 후임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키가 큰 b 후임이 눈을 뜬 채 난간에 목을 매고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어우, 저도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숨을 헐떡였습니다. 일단 당직 부관한테 알려야 해서,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1층으로 내려갔죠. 그 와중에 1층에 내려가기 위해서 b 후임의 긴 다리를 피해서 좁은 계단 사이로 내려가야했습니다. 당직부관한테 알리고, 줄을 자르고, 심폐소생술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녀석이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가고 나서야, 우리 둘은 멍한 상태로 cctv실로 가서 새벽 근무를 했습니다.
뭔가 참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말로만 들어보았던, 어느 매체에서도 직접 보진 못했던 장면을, 그것도 전날 저녁까지 대화했던 후임이 그런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섭고 섬뜩하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만, 나중에는 삶이 이렇게도 쉽게 끝날 수 있구나, 하며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끔찍한 사고 현장을 목격하신 분들도 그걸 느끼셨겠죠. 시체를 보는 느낌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 사람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으면 정말 섬칫하죠. 나 또한, 소중한 사람 또한 언제든 불의의 사고로 그렇게 될 수 있단 사실이 몸으로 체감이 됩니다.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삶이 일상의 영역뿐만 아니라, 재앙의 영역에도 발을 뻗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금의 일상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와 가족들이 건강히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나 비현실적인 재앙이 닥칠 수 있으니, 현실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